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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일 - 삼종 기도
작성자 : 김호열 작성일 : 2016-07-12 조회수 : 9850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연중 제 15주일 - 삼종기도 (2016년  7월  10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 함께한 신자들 그리고 순례객들과 삼종기도를 하시기 전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하신 훈화 말씀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좋은 하루입니다!  


오늘 전례는 루카 복음 (10,25-37)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이 비유는 친근하고 간단하게 말하는 가운데, 하나의 삶의 형식을 가리켜 줍니다. 중심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여정에서 만나고 우리를 사유하게 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우리를 사유하게 합니다. 이러한 것이 없을 때 무엇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계명에 대해서 율법 교사와 대화하는 중에 사용하십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25-28절). 율법 교사가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29절). 우리 또한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은 누구인가? 누구를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는가? 내 가족인가? 내 친구들인가? 내 동포들인가? 내 동향 사람들인가? ... 누가 내 이웃인가?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대답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만난 강도들에게 얻어 맞고 쓰러져 있었다. 그 길로 먼저 어떤 사제가 지나갔고, 그 다음에 레위인도 지나 갔지만 그들은 상처입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았지만 멈추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31-32절. 참조). 그 후에,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지 않는다고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이 지나갔다. 그는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싸맨 다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3-34절). 이튿날 그는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상처입은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 부탁하면서 비용이 더 들면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35절. 참조).


이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를 보며 그에게 물으셨다: “너는 이 세 사람 -사제, 레위인, 사마리아인-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6절). 학식이 있던 율법 교사는 자연스럽게 대답합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37절).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가 -또한 우리들이- 처음에 가지고 있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누가 내 이웃이고 그렇지 않는가를 결정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구별해 놓아서는 않됩니다. 이웃이 되고 않되고는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결정은 내가 합니다. 내가 만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공격적이고 이질적이라고 해도 그가 나의 이웃이 되고 않되고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37절). 


좋은 가르침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를 보거든 이웃이 되어주어라.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단지 바람에 흩어져 버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물 같은 말, 말, 말,..”이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말로만 하지 마십시오. 이웃을 향해 기쁨과 사랑으로 행하는 착한 행동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싹트고 열매 맺습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각자 마음 속에서 자신에게 대답하십시오-: 나의 믿음은 결실을 내는가? 나의 믿음은 착한 일을 하게 하는가? 아니면, 열매 맺지 못하고, 살아 있는 대신에 죽어 있지는 않은가? 나는 이웃이 되어 주는가, 아니면 그냥 곁을 스쳐 지나가는가? 나는 사람들을 나의 취향에 따라서 구별지어 놓지는 않는가? 이 질문들은 자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자비의 행위에 따라서 심판 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을 너는 기억하느냐? 거의 초주검이 되었던 그 사람은 바로 나였구나. 너는 기억하느냐? 배고파 울던 그 아이는 바로 나였구나. 아무런 관심없이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그 노인들이 바로 나였구나. 아무도 찾지 않았던 병원에 입원해 있던 병자가 바로 나였구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길을, 이웃을 향한 아낌없는 사랑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우선적 계명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길 기도합시다. 이 길이 바로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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