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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구원으로 향하는 문은 좁지만 언제나 활짝 열려있습니다.
작성자 : 이부영 작성일 : 2016-10-19 조회수 : 1866

[교황청 소식] 보낸사람 : 오늘보다는 내일을 운영자 16.08.11 06:07

교황, 구원으로 향하는 문은 좁지만 언제나 활짝 열려있습니다.

자료사진. 2016년 8월 4일 아시시를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 - AFP(21/08/2016 18:33)

 

☞ '요한 복음 17장은 모든 사제의 공통된 기도'입니다.

(http://cafe.daum.net/lby00523/9LvK/571)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2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연중 제21주일 삼종기도를 순례객들과 함께 드렸다. 교황은 삼종기도 전 말씀을 통해 루카 복음 13장 22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을 묵상하며 구원으로 향하는 문은 우리의 오만과 죄를 버리도록 좁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 문도 언젠가는 닫히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의 삶이 비디오게임이나 연속극이 아니기 때문에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살며 구원으로 향하는 삶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라고 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 전문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복음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에 대하여 묵상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하고 계실 때에 한 사람이 다가와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라는 질문을 하는 것을루카 복음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인 대답 대신 제자들이 잘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 주관적인 언어로 다른 차원의 논의를 내어 놓으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24절)

 

그분께서는 문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통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숫적인 문제 즉 몇 사람이나 구원을 받는가라는 것 대신,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모두가 구원이라는 문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십니다.

 

길은 문을 발견하도록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은 어디에 있습니까? 문은 무엇입니까? 누가 문 입니까? 예수님 자신이 문이십니다.(요한 10.9 참조) 그분께서 ‘나는 문이다.’라고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랑과 이해와 보호를 만나게 되는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지만 이 문이 왜 좁은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왜 좁다고 할까요? 가혹하기 때문에 문이 좁은 것이 아닙니다, 아니예요.

 

우리가 가진 오만과 두려움을 지니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며, 겸손과 그분에 대한 신뢰, 자신의 죄와 용서의 필요성을 알게 되어 마음을 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좁습니다.

 

우리의 오만을 걷어내기 위해 좁은 것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문은 좁지만 모두를 향해 항상 열려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편애하지 않으시며 언제나 모두를 차이 없이 받아들이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오만과 두려움을 걷어내기 위한 좁은 문은 하느님께서 편애하지 않으시며 모두를 받아주시도록 늘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구원은 쉼 없이 흐르는 자비입니다. 쉼 없이 흐르는 자비는 모든 방벽을 무너뜨리고 빛과 평화의 놀라운 모습을 펼쳐 줍니다. 문은 좁지만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문은 좁아도 언제나 활짝 열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다시 한번 온전한 생명과 화해와 평화의 문을 지나 그분과 함께 가자는 긴급한 초대를 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든, 우리를 안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기 위해 한사람 한사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실 수 있으시며, 오직 그분만이 우리 존재의 완전한 의미를 주실 수 있고, 진정한 기쁨을 제공해 주십니다.

 

믿음과 복음의 문인 예수님이라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세속적인 성향과 나쁜 습관과 이기심과 갇혀있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사랑과 만날 때 진정한 변화가 옵니다. 우리의 삶은 성령님의 빛으로 빛나게 됩니다. 꺼질 수 없는 불입니다!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침묵 중에 잠시, 내 오만과 건방, 죄처럼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런 후에 다른 편에서 용서해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의 자비로 열려있는 문을 생각해 봅시다. 잠시 침묵 중에 문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께서는 여러 상황에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구원의 문을 들어서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 문은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되는 기회입니다. 예수님께 다가갔던 사람처럼 구원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를 해서는 안되며 구원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버리는’(25절)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선한 분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왜 문을 닫겠습니까? 어느 순간에 문을 닫아버리실까요? 우리의 삶이 비디오 게임이나 연속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진중한 것이며 영원한 구원이라는 목표에 다다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늘의 문이신 성모님께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그 여정을 잘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기도합시다. 그 길은 사랑에서 벗어났던 모든 이들을 다시 이끌 수 있는 구원의 길입니다. 구원하는 사랑이며, 지상에서 행복과 인자함과 인내와 정의를 주는 사랑이고, 자신을 잊고 타인들에게, 특히 약자들에게 헌신하는 사랑입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가난한 자입니다

 


☞ 교황, "교회도 거리로 나가라. 불평등과 맞서 싸워라."(루가 7장 12-17) ▶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규정 ▲ "… 교회와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무조건 순명해야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틀린 생각이다 " ▲ "이렇게 생각하는 성직자는 사목직이 봉사직이라는 교리를 모르는 사람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평신도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모르는 영구한 미성년자이다.” ▲ “원시종교에서 그들이 숭앙하는 신과 인간을 중개한다고 하는 무당이나 도사를 숭배했듯이 신자들이 성직자를 숭배해서는 안된다.” ▲ "이러한 신앙 행태를 '무당 숭배 잔재'라고까지 규정한다." ▲ 무당 : 귀신을 섬겨 굿을 하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는 일에 종사하는 여자. 한자로는 ‘巫堂’으로 쓴다. ▲ 숭배 : 훌륭히 여겨 우러러 공경함. ▲ 잔재 : 과거의 생활 양식이나 사고방식의 찌꺼기 ▲ "결국 성직중심주의를 조장하는 책임의 절반은 미성숙한 신앙의식을 지닌 미성년자인 평신도에게로 돌아간다."(정하권 몬시뇰) ☞ 가톨릭대학교 백운철 신부는 ▲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늑대처럼 영악하게 살고자 하지만 교황은 골리앗과 다윗의 예를 들며 양으로 살라고 권고한다” ▲ “사제들은 성장 추구형 관리자가 아니라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는 착한 목자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방문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머무시는 자리마다 고운마음 피우시길 바랍니다. 지팡이 로벨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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