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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4위 약전
박대식 (빅토리노)
출생년도 | 1812 | 남녀 | 남 | 출생지 | 경상도 김해 | 직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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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연령 | 56 | 순교일 | 1868. 10. 12 | 순교지 | 경상도 대구 | 순교방법 | 참수 |
박대식(朴大植) 빅토리노는 경상도 김해 예동(현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 사람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로는 언제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68년의 박해 때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과 김해 포졸들이 함께 그의 집으로 몰려와 빅토리노와 그의 조카 박수연을 체포하여 김해 관아로 압송하였다. 당시 그의 조카는 아직 예비 신자였다.
김해 관아의 옥에서 빅토리노는 송 마태오와 박 요셉을 동료로 맞이하였다. 이후 그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한 뒤 3일 만에 대구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다.
대구 감사는 결국 빅토리노와 그의 동료들을 결코 배교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따라 빅토리노는 조카와 동료 2명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로, 당시 빅토리노의 나이는 56세였다.
참수형을 집행한 뒤 감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명목 아래 그들의 머리를 높이 매달도록 하였다. 한편 빅토리노의 가족들은 그가 순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구로 와서 그의 시신을 찾아다 고향에 안장하였다.
김해 관아의 옥에서 빅토리노는 송 마태오와 박 요셉을 동료로 맞이하였다. 이후 그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한 뒤 3일 만에 대구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다.
대구 감사는 결국 빅토리노와 그의 동료들을 결코 배교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따라 빅토리노는 조카와 동료 2명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로, 당시 빅토리노의 나이는 56세였다.
참수형을 집행한 뒤 감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명목 아래 그들의 머리를 높이 매달도록 하였다. 한편 빅토리노의 가족들은 그가 순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구로 와서 그의 시신을 찾아다 고향에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