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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4위 약전
김천애 (안드레아)
출생년도 | 1760 | 남녀 | 남 | 출생지 | 직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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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연령 | 41 | 순교일 | 1801. 8. 27 (혹은 8. 28) | 순교지 | 전라도 전주 | 순교방법 | 참수 |
고향을 알 수 없는 김천애(金千愛) 안드레아는 ‘전라도의 사도’로 유명한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중 그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당시 유항검의 집은 전주의 초남이(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었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 안드레아는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는 고결한 마음으로 신자의 본분을 지켜나갔다. 그는 진리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으며, 교리의 가르침을 굳게 지킬 줄도 알았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전라도에서는 아우구스티노가 가장 먼저 체포되었다. 그 뒤를 이어 김천애 안드레아도 그의 맏아들인 유중철(요한)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이내 감영에서는 안드레아에게 문초와 형벌을 가하면서 배교와 밀고를 강요하였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다. 그리고 그 해 7월경 동료들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안드레아의 신앙은 형조에서도 한결같았다. 그는 어떠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십계명을 버릴 수는 없으며, 한 번 죽는 것인 만큼 죽음을 달게 받겠다.”고 진술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전주로 압송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8월 27일(음력 7월 19일) 혹은 28일로, 그의 나이는 41세였다. 그가 형조에서 한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천주교는 큰 도리요 지극히 훌륭한 행위로, 여러 해 동안 깊이 믿어 이미 뼛속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저에게) 형벌과 죽음은 영예로운 일이니, 어찌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범한 죄를 돌이켜보건대, 오직 빨리 죽기만을 원할 따름입니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 안드레아는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는 고결한 마음으로 신자의 본분을 지켜나갔다. 그는 진리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으며, 교리의 가르침을 굳게 지킬 줄도 알았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전라도에서는 아우구스티노가 가장 먼저 체포되었다. 그 뒤를 이어 김천애 안드레아도 그의 맏아들인 유중철(요한)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이내 감영에서는 안드레아에게 문초와 형벌을 가하면서 배교와 밀고를 강요하였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다. 그리고 그 해 7월경 동료들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안드레아의 신앙은 형조에서도 한결같았다. 그는 어떠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십계명을 버릴 수는 없으며, 한 번 죽는 것인 만큼 죽음을 달게 받겠다.”고 진술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전주로 압송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8월 27일(음력 7월 19일) 혹은 28일로, 그의 나이는 41세였다. 그가 형조에서 한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천주교는 큰 도리요 지극히 훌륭한 행위로, 여러 해 동안 깊이 믿어 이미 뼛속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저에게) 형벌과 죽음은 영예로운 일이니, 어찌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범한 죄를 돌이켜보건대, 오직 빨리 죽기만을 원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