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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비추어라(이사야 60,1)
하느님의 종 124위 약전
권천례 (데레사)
출생년도 1783 남녀 출생지 경기도 양근 직업 동정 부부 양반
순교연령 36 순교일 1819. 8. 10. 이후 순교지 한양 순교방법 참수
 권(權) 데레사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딸이요, 1801년의 신유박해 순교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의 동생이다. 1784년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난 데레사는 6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791년의 신해박해로 아버지까지 잃어야만 하였다.
  
   데레사는 어렸을 때부터 덕행과 신심이 남달랐다. 또 성장한 뒤로는 온화함과 애덕으로 형제간에 평온을 유지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 17세 때 일어난 신유박해로 온 집안이 풍파를 입게 되었다.
  
   아무도 의지할 데가 없게 된 데레사는 조카 하나를 데리고 한양으로 올라가 생활하면서 동정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친척들이 그녀를 찾아와 ‘조선에서 동정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결국 그녀는 계속되는 친척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동정을 포기하기로 작정하였으며, 20세 때 조숙(베드로)과 혼인을 하였다. 당시 베드로는 냉담자였다.
  
   혼인하는 날 밤 권 데레사는 ‘동정 부부로 살자고 부탁하는 글’을 써서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베드로는 마음이 변하여 아내의 원의를 들어주었고, 잠깐 사이에 신앙심이 되살아나서 딴 사람이 되었다.
  
   이후 데레사 부부는 남매처럼 지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면서 생활하였다. 그들의 신심은 날로 깊어졌고, 기도와 복음 전파와 고신극기 행위는 그들 부부의 일상이 되었다. 비록 그들은 가난하였지만 남을 위한 애긍에 열심이었다. 이렇게 15년을 지내는 동안, 데레사는 남편이 지난날의 약속을 깨트리려고 할 때마다 착한 말로 권유하여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곤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데레사 부부는 성 정하상(바오로)을 도와 일하게 되었다. 그가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해 북경을 왕래할 때마다 그들 부부는 모든 뒷바라지를 하였다. 한편 이 무렵에는 고 바르바라(혹은 막달레나)라는 과부가 함께 살면서 그들 부부를 도와주었다.
  
  
   그러던 중 정 바오로가 다시 한 번 북경에 갔을 때, 포졸들이 우연히 조숙 베드로를 수색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내 베드로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와 함께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러자 데레사는 즉시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자백하였고, 고 바르바라와 함께 남편을 따라 옥으로 끌려갔다. 이때가 1817년 3월 말경이었다.
   문초가 시작되자, 관장은 데레사 부부에게 ‘배교하고 동료들을 밀고하라’고 추궁하거나 달콤한 말로 유혹하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어느 누구도 밀고하지 않았으며, 꿋꿋하게 혹독한 참아냈다. 데레사는 관장이 배교를 권유하자 이렇게 답하였다.
  
   “천주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고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십니다. 어떻게 그분을 배반하겠습니까? 이 세상 사람 모두 부모를 배반하는 경우에는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어찌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시는 그분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관장은 다시 몇 차례에 걸쳐 문초와 형벌을 가하였지만, 데레사 부부의 신앙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옥에 가두라고 명령하였다. 이후 고통스러운 옥살이 중에도 데레사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또 남편의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하느님께서 내려주실 순교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자.”고 권면하였다.
  
   데레사 부부와 고 바르바라는 2년 이상을 옥에 갇혀 있어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은 여전히 굳건하였으며,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들 셋이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것은 1819년 8월 10일(음력 6월 20일) 이후로, 당시 데레사의 나이는 36세였다.
  
   교우들은 그들이 순교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시신을 거둘 수 있었다. 이때 교우들은 데레사의 머리뼈를 바구니에 담아 성 남이관(세바스티아노)의 집에 두었는데, ‘바구니를 열면 향기가 진동하였다’고 여러 교우들이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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